권희정
필자가 하는 일은 조경시설, 어린이 놀이터, 체육시설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자주 만난다. 시각장애를 가진 고모님이 계시고, 패럴림픽에서 당당히 경쟁했던 김미정 선수와도 교류하며 자연스레 ‘장애는 다름이 아니라 약간의 불편함’이라는 인식을 오래전부터 가져왔다. 그런 내에게 빅토리아 페레스 에스크리바가 쓴『눈을 감아 보렴!』은 단순한 동화책이 아닌 깊은 공감의 시작점이었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 형과 그를 돕는 동생의 이야기를 통해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를 섬세하게 다룬다. 형은 눈이 보이지 않지만, 청각과 촉각을 통해 세상을 풍부하게 인식한다. 동생은 형에게 세상을 설명하려 애쓰지만, 자신의 시각적 기준으로 말하는 탓에 형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동생에게 말한다.
“그럼 눈을 감아 보렴.”
이 말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형의 입장을 직접 ‘느껴보라’는 깊은 공감의 시작이었다.
시각장애인 김미정 선수는 나가노 패럴림픽 알파인 스키에서 가이드 러너와 함께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골볼과 볼링 선수로도 활약했다.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가이드러너가 되어주고 있다.
장애는 단절이 아니라, 공감의 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공공시설을 설계하면서도 늘 이런 질문을 품는다. "이 시설은 시각장애인도 편히 이용할 수 있을까?" "이 동선은 누군가에게 불편하진 않을까?"
그 시작은 책 속 동생처럼 ‘눈을 감고, 상대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 책은 단지 시각장애를 다룬 동화가 아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본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마음이 있다. 상대방의 말이 이해되지 않을 땐, 눈을 감고 그 사람의 감각과 마음으로 세상을 느껴보려 할 때 진짜 공감이 시작된다.
눈을 감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