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지희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쏟아내며 산다. 회의 중에, 카페에서, 메시지 속에서. 그러나 그렇게 흘러나온 말들 중, 마음에 남는 말은 몇이나 될까. 『글자를 모으는 소년』이라는 그림책은 바로 그 질문에 다정하고도 단단한 대답을 건넨다.
이 책의 주인공은 조용한 소년이다. 그는 남들처럼 말을 잘하거나, 유창하게 자기 생각을 전하지 않는다. 대신 길가에 흩어진 글자들을 모은다. ‘안녕’, ‘기다릴게’, ‘고마워’, ‘괜찮아’ 같은 짧고 따뜻한 말들이다. 그는 그 단어들을 모아 꼭 필요한 순간, 좋아하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건넨다. 과장도, 군더더기도 없는 그 말은 마음을 울리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는 말이 단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전달하는 그릇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소통은 단지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다. 진짜 소통은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특히 사랑하는 관계일수록 말은 더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감정을 ‘알겠지’ 하는 태도나, ‘말하지 않아도 돼’라는 생각은 오해를 만든다. 관계는 표현되어야 유지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적절한 언어와 표현이 없다면 점점 흐려진다.
말은 ‘양’보단 ‘진심’이 중요하다. 과하게 많은 말은 소음을 만들고, 지나치게 적은 말은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건네는 한 문장, 한 단어는 누군가의 하루를 밝히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실제로 상담과 치료의 현장에서도 “그때 그 사람이 해준 말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고백이 자주 나온다. 말은 기억이 되고, 기억은 사람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듣고 싶었던 말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리고 지금 내 말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진 않은가?
『글자를 모으는 소년』을 읽고 나면, 우리는 말의 온도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수고했어”, “나는 네 편이야”, “괜찮아, 기다릴게” 같은 짧은 말들이 누군가의 지친 하루를 어루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된다.
소통은 말의 기술이 아니다. 마음의 언어를 배우고, 연습하고, 건네는 과정이며 평생을 갈고 닦아야 할 과제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관계를 지키는 다리다. 이제 우리는 그 말의 무게를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글자를 모으는 어느 소년처럼 따뜻한 말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은 그렇게, 말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