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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대의 글로사니즘] 말버릇으로 읽는 무의식의 풍경 - 좋은말, 나쁜말, 이상한말
  • 기사등록 2025-06-16 09: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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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살아, 진짜.”

지인의 입버릇이었다. 누가 농담을 해도 “못살아”, 힘든 일이 생겨도 “못살아”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처음엔 그냥 버릇인 줄 알았다. 다정하게 투덜대는 표현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그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혼한 이후부턴 그 말이 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다.

 

말은 무의식을 반영한다. 특히 반복되는 말버릇에는 평소 자주 하는 생각, 욕망, 억눌린 감정 등이 드러난다. “못살아”라는 말은 스스로의 감정 상태를 매번 확인하고 선언하는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치 마법처럼, 그 말은 결국 현실이 되어버렸다. 습관처럼 되뇌던 말이 현실을 끌어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았죠.”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면 우리는 겸연쩍게 이런 말을 꺼낸다. 겸손의 표현이라 여기지만, 이 말들에도 또 다른 무의식이 깃들어 있다. 겸손하지 못한 태도는 교만하게 비춰질 수 있다는 걱정과 이분법적 사고, 차후 실패했을 때 비난받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 혹은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자기 부정 등.


말은 사고의 패턴이자 정체성의 구성 요소다. “나는 원래 그래”, “난 안 돼”, “재수 없게도” 같은 말버릇은 결국 내 인생의 기본 톤을 결정짓는다. 말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행동을 이끌며, 행동은 삶의 방향을 바꾼다.

 

심리학에서는 자주 쓰는 말 속에 자존감 상태를 비롯해 삶의 태도, 대인관계 방식과 가치관 등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고 본다. 자신을 낮추는 말에는 흔히 ‘비난 회피’나 ‘실패의 사전 예방’ 심리가 숨어 있다. 칭찬 앞에서조차 자기 노력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겸손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믿지 못해서 그 말을 한다.

 

“죽겠다”, “힘들다”, “재수 없다.”

이런 말들도 마찬가지다. 말이 현실을 만든다. 뇌는 언어를 감정의 신호로 인식한다. ‘슬프다’고 말하면 슬픈 감정 회로가 자극되고, ‘괜찮다’고 말하기만 해도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다. 말이 감정의 스위치를 켜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말버릇만 바꿔도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요즘 어떤 말을 입에 달고 사는가? 무심코 내뱉는 그 말은 나를 위로하고 있는가, 아니면 천천히 갉아먹고 있는가?


말은 가장 강력한 자기 암시다. 특히 반복되는 말은 내 사고의 방향을 고정시키고, 삶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어쩌다 보니”는 내 인생을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맡기는 선언일 수 있다. “그냥요”는 내 선택과 의지를 부정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결국, 말은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얼마나 닮아있는가를 되묻는 거울이다. 요즘 당신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은 무엇인가? 그 말 뒤에는 어떤 감정이 숨어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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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6-16 09: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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